학교 운영

사회삼원체에 따른 학교 운영

발도르프학교에서 교직원에게 주는 급여를 우리는 생활급여라고 부릅니다. 생활급여란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급여라는 뜻입니다.
발도르프학교에는 성과급도 없고, 시간외수당도 없습니다. 특별 보너스도 없지요. 일을 더 많이 한다고, 더 잘 한다고 급여를 많이 받는게 아닙니다. 작은 일을 하든 큰 일을 하든 어떤 일을 하든 동등한 생활급여를 받는 것이 우리 학교의 원칙입니다. 사회적 상식으로 보면 받아들이기 곤란한 조건이기도 합니다. 물론 생활조건이 모두 다르므로 기계적인 동일성이 강요되는 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급여가 교사의 능력 또는 성과와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급여는 노동의 대가라고 우리는 배웠습니다. 하지만 발도르프학교에서는 급여와 노동이 별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각각 다른 삶의 영역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적게 투자해 많은 이익을 얻는게 효율성입니다. 적게 일하고 더 많이 받으려는 태도도 마찬가지지요.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이기주의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급여의 문제는 그래서 첨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발도르프학교에서는 한 사람의 노동, 즉 그의 능력과 성과는 경제적 영역이 아니라고 봅니다. 급여를 받아서 먹고 사는 문제는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영역이고, 개인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와는 다른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인지학의 창시자인 루돌프 슈타이너는 발도르프학교를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만들었습니다. 슈타이너가 생각하는 새로운 사회란 어떤 것일까요?
  
슈타이너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모두 넘어서려 했습니다. 그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면밀히 관찰하여 사회의 특성을 세 가지 영역으로 구분했습니다. 일을 해서 먹고 사는 살림살이의 영역, 정신활동을 통해 예술과 지식을 창조하는 문화의 영역,  사회의 질서와 규칙을 다루는 법적인 영역이 그것입니다.

교육은 어느 영역에 속할까요?
교육활동 자체는 정신 - 문화의 영역입니다.

그렇다면 교육활동이 벌어지는 학교에서 급여는 어느 영역일까요? 물론 경제 영역입니다.
교사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창조행위로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굶어가며 일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급여를 받는 것입니다. 
두 영역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약속을 만들고 계약서를 쓰기도 하는데, 그것은 법적인 영역의 일입니다.

부모님들이 학교에 학비를 내는 것은 발도르프교육이라는 상품을 사는 행위가 아닐 것입니다. 단순히 우리 아이가 더 좋은 수업을 받는 일에 대한 대가가 아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정신 - 문화적인 움직임이 벌어질 수 있도록 후원하는 일입니다.

사실 아이들은 무상으로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국가는 당연히 그런 일을 지원해야겠지요. 마찬가지로 교사들은 경제생활에 대한 부담 없이 자유롭게 교육행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육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니까요.

우리가 이러한 인지학적인 이상을 갖고 사회를 새롭게 개선해낸다면, 우리는 좀 더 인간적이고 풍요롭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더 행복한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겠지요.

부모님의 입학기부금과 월사금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에 쓰입니다. 그래서 자율적인 차등월사금이 시행될 수 있는 것이고, 나눔 입학이 가능한 것입니다.

발도르프학교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문화적인 공간이기에 부모님들의 학비는 이러한 문화적인 활동이 활성화될 수 있는 물질적 토대가 됩니다. 따라서 각자의 여건에 맞게, 그리고 공평한 규칙에 따라 학비를 기부하는 것이 우리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문화의 초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